결국 유일한 휴일, 토요일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냈다.
아침부터 교육이 있다하여 내내 시달렸는데 점심 무렵 돌아
와 깨어보니 밤. --;
이제는 많이들 힘들게 살아가는 것처럼 나 또한 소망은 밤
에 집에서 편히 잠드는 일이다. 자기 전에 이런저런 환상에
젖어보기도 하고, 일어나기 싫어 뒤척대며 하얀 아침 햇살을
맞아보고도 싶다. 그리하여 나는 조만간 창 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여행을 가서 내내 잠만 잘 계획이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아침을 맞이한다. 생활이 생활인지라
여전히 잠들지 못한 채 내내 채팅만 하며, 또 언제나처럼 담
배 한 갑과 커피 세 잔을 뽀작내며 밤을 새고 말았다. 달라
진 게 있다면 커피가 Original Choice에서 Decaf Choice라는
정도.
지난밤에는 중국집도 모두 문을 닫은 밤에 깨어난지라 햄
과 인스턴트 볶음밥 재료를 사다 오랜만에 직접 볶음밥을 만
들어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던 게다. 아무래도 내가 내 어머
니보다 요리는 한 수 위인 듯도 싶다.
그렇지만 지난밤, 밥통의 밥을 모두 먹어버렸더니 끙, 밥
이 없다. 배고파 죽겠는데 지금 밥이 없다. 훌쩍.
라면이야 박스로 사다놓았기에 충분하지만 이미 난 라면에
질렸다. 특히 컵라면류라면 헛구역질까지 나올 지경이 되어
버렸다.
방법은 단 하나. 내가 밥을 해야겠구나.
예전 홀로 자취하던 시절, 칼사사 엠티 가서 남은 쌀로 다
음 엠티까지, 내 반년을 살았던 건 유명한 얘기다. 내 밥통
속에 곰팡이 썩은 초록색 밥은 더 유명하다. 밥을 많이는 안
해봤지만 적어도 너댓 번은 해봤다는 증거.
난 볶음밥을 잘 하는 것처럼 밥도 잘 짓는다. 탑탑하지도
않고, 질지도 않게 적당히 쫄깃한 밥을 만들어 낸다. 그렇지
만 이번엔 너무나도 오랜만에 해보는 밥이기에 다소 걱정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차곡차곡 쌀 알갱이를 씻고
손을 살짝 덮을 만큼 물을 담아 밥통에 넣을 때까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익숙함이 살아났다. 지금은 맛있게 밥이 익
어가고 있는 중. ^^*
오랜만에 밥을 지으며 의아해 한다. 나처럼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하는 가정적인 남편을 왜 거부할까, 왜 내 청혼을
받아주지 않을까. 게다가 나는 바람둥이도 아니고, 부인 앞
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도 하고 있고, 또
다소의 이해심도 있는데 말이다.
역시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남편으로서 조금의 손색도 없
다. 그러니 나를 데려가렴. --;
지금은 하얀 쌀밥이 익어 가는 중. 뭉게뭉게. ^^
나는 수면부족으로 인한 정신착란 중. 여전한 회심의 반어
법. --+
achor Webs. ac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