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뉴스 말미에 속보로 숭례문에 화재가 났다는 걸 보았는데
연기만 나던 상태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러나 회에 소주 한 잔 하고 들어온 새벽, TV를 트니
숭례문은 엄청난 화염에 휩쌓여 있었다.
나는 교실에서 김일성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와
또 일하던 중 9.11 테러 소식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내게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전율을 느낀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미 9시 뉴스를 통해 화재를 알고 있었기에 그 충격은 더 했다.
속보를 보고 있던 중
숭례문은 완전히 전소되어 무너지고 말았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만
의아하게도 나는 역사의 한 중심에 서 있는 느낌을 받았다.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화재로 소실된 목조건물에 대해 공부했던 기억이 되살아 났고,
나는 그 순간 그런 역사적 시간 속에 서 있던 것이었다.
그것도 그냥 그런 문화재가 아니라 내셔널트레져의 첫 번째였던 것.
물론 단순히 관리상 붙인 순번이겠다만.
후세의 언젠가 학생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국사시간을 통해 숭례문은 2008년 완전히 전소되어 새로 건축되었다고 배울 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내가 그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노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의 개인적인 행운 같게만 느껴졌다.
국가적 불행이 개인적 행운이라고 말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하군. -__-;
방화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던데
만약 방화라면 그 방화범을 어찌 해야할까도 걱정이다.
방화가 5대 강력범죄이긴 하지만
인간의 생명과 국가적 문화재 중 양자택일을 해야한다면 당연히 전자다.
곧 방화범을 죽여버린다는 것도 좀 심하다 싶긴 하다.
그렇다고 혹시라도 사회를 비관하여 술 마시고 우발적으로 저지른 국가적 손실에 대해
서장대 방화범처럼 1년 6개월 정도 선고한다는 것도 어이 없긴 마찬가지.
신문 등에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의 훼손으로 무기징역까지 가능할 거라고 나오고도 있던데
아무튼 방화범 개인에게도, 국가 전체에도 매우 애석한 결론뿐이다.
특히나 혹 방화범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자라면 책임 없는 결과만이 남을 뿐이겠다.
완벽한 보호란 있을 수 없겠지만
역시, 그럼에도 국가에서 소중한 문화재에 대한 보호에 더욱 신경을 썼어야 하는 게 우선이긴 하겠다.
-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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