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사사 게시판』 29695번
제 목:(아처) 문화일기 87 적멸
올린이:achor (권아처 ) 98/07/09 15:02 읽음: 20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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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멸, 박일문, 민음사, 1998
1998년 5월 30일 15시 교보문고.
역사는 이를 기록한다.
위대한 두 거장의 만남.
난 박일문을 만났고, 박일문은 나를 만났다.
우리는 함께 현상되지 않을 사진을 찍었고,
대화를 했고,
그리고 사인을 했다.
<감상>
누누히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은 하지만
그의 친필 사인이 들어있는 이 책을
한 달 이상동안 읽지 않은 이유라면,
아마도 나도 모르게 생겨버린 서구문물에 대한 환상으로
불교에 대한 반발심이라고나 할까.
틀림없이 난 무교도였지만
어쩐지 기독교 계열에 끌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
불교에 대한 편견을 말끔히 없애버릴 수 있었다.
刹羅滅刹羅生 과거, 현재, 미래 시간의 무의미함과
불교적 輪廻를 이야기한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또한
불교의 무상함이나 도교의 무위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인생사 덧없음... 뜨아. --;
어쩌면 불교나 도교는 인간을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는
최고의 수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완벽한 허무주의를 겪고 난 이후에야
진정한 낙천주의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런 낙천주의야 말로
生基心, 혹은 Carpe Diem의 바른 이름 같았다.
應無所住 而生基心, Seize the Day를 잘못 해석하여
단순히 마음 흐르는대로 삶을 즐긴다면
훗날의 깊은 후회는 어찌 감당할 수 있으랴.
세상과 떨어져서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그들이 참 부러워졌다.
무엇에 연연함 없이 정적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테니.
지난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를 읽었을 때 역시 느낀 바이지만
동양 철학도 상당히 매력적인 것 같다.
불교와 반대되는 성향이 깊은
하이데거나 사르트르 등 현상학자들의 실존철학이
아직 내게 있어서는 어딘가 더 폼나 보였던 게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편견을 깨달았다.
특히 일체의 무상함을 깨닫고
고요히 관조할 수 있음이
그 무엇보다 멋있어 보였다.
"980708 153000 無爲!"
역시 박일문은 최고였다.
동서고금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 무엇을 그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하여도
충분한 매력을 갖추고 있으니.
寂滅, 解脫, 涅槃, 滅道에 이르고 싶다...
空日陸森 Fucking 우레 건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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