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을 한 이후 학교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을 일은 어디서든 비슷할 1년차밖에 없을 줄 알고
학교에 전역 신고를 하지 않았던 게 실수다.
당시 나는 내가 학교를 더 다니게 될 거란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던 게다.
덕분에 올해,
나는 아직 분명한 학생으로서 학교에서 편하게 예비군 훈련을 받을 수 있음에도
동네에서 빡세고 귀찮은 방식으로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또한 그것이 이른바 황금 연휴 중의 하루인 오늘이었고. !_!
낮에는 일 때문에 저 머나먼 땅, 성남까지 갔다가
바로 저녁에는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부천에 가까운 우신중학교까지 가야했으니
서울을 완전히 횡단한 셈이다.
물론 이토록 이동거리가 긴 것은 내게 극히 드문 일.
남들은 예비군 훈련을 가면 옛 동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도 하던데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애초에 아는 얼굴도 없었을 뿐더러
몇 안면이 있어 보이는 얼굴의 주인공들 역시 너무 오래된 기억으로 인해 서로간에 한 마디 하지 못했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홀로 담배를 피우며 결코 효율성 없는 예비군 훈련 시간을 버텨냈어야만 했다.
그러나 연간 훈련시간이 지정된 예비군 훈련에 있어서 효율을 이야기하는 것도 넌센스이긴 하다.
조교들이나 예비군들이나 모두.
머릿 속엔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사고가 완벽히 들어박혀 있기에
건성건성 이뤄지는 획일적인 교육은 물론이거니와 전반적인 무관심과 냉담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분단된 조국의 상황 속에서 예비군 훈련은 필수일 수밖에 없고,
또 지금 주어지는 시간은 물론 적어진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리 큰 무리수는 아니라고 생각은 했다.
또한 이제서야 2년차 예비군으로서 느꼈던 한 가지는,
역시 군대는 완벽히 남성위주의 사회라는 점이었다.
기본적인 구성원이 남성이라는 데에서 오는 여성에 대한 격하는 물론이거니와 여성이 있었다면 언어적 성폭행으로까지 확대될 법한 이야기들이
별 거부감 없이 일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듯 보였다.
그리고 다른 어떤 능력보다도 육체적인 힘이 가치의 최대 판단 기준이 되는 군이라는 상징이
지금 이순간까지도 나와 공존하고 있다는 게 새삼 놀랍기도 했고,
냉전논리의 용어들, 이를테면 북한을 너무도 명확하게 적군으로 규정하는 등의 용어들이
마치 종교인들의 성서와 같이 결코 흔들릴 수 없는 가치처럼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걸 보며
역시 군만큼 보수적인 집단은 없을 것이란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반감이라기 보다는 군으로서 당연해 보이는 면이 많긴 했다.
서른이 되어서야 예비군 훈련을 끝마칠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
서른이면 2006년 독일 월드컵이 있는 해이자 잔치가 끝나는 해가 아니던가.
역시 서른은 많은 것이 끝나고, 많은 것이 시작되는 놀라운 해임이 분명하다.
좋다. 기대해 보자. 어떤 삶이 과연 펼쳐질 지.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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